책여행책
박준 (여행작가)
Epilogue 'at home'
정착해 사는 즐거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행을 언제 얼마큼 해야 한다는 말이 의미가 없듯, 지금은 여기 사는 게 편할 뿐이다. 하루하루를 창조적으로 산다면 일상이 곧 여행이다. 내게 '책여행'은 그런 시간이었다.
'집에서 하는 여행'은 흥미진진했지만, 문제는 엉뚱한 데서 터져나왔다. 출간을 약속하고 열심히 글을 써야 할 마음이 언제부턴가 멋대로 출렁대기 시작했다. 몸은 거실 소파에서 책을 읽거나 테이블에 앉아 글을 쓰지만 마음은 느닷없이 세상의 여기저기를 떠돌았다. 매순간 책 속의 낯선 세계로 빠져들었다. 단지 책을 읽은 게 아니라 실제로 그곳에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사막의 사구 아래 있었다. 모래 위에 담요 한장을 깔고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푸르륵, 네 발을 하늘로 치켜든 낙타의 몸짓만이 적막을 깨운다. 어느새 푸른빛이 도는 어스름이 서서히 사막을 물들인다. 손가락 끝으로 모래를 찍어 허공에 흩날린다. 바람과 함께 모래알갱이들이 눈과 귀, 빰과 목덜미를 스친다. 문득 저 앞에서 인기척이 났다. 누군가 주위를 서성인다. 초라한 행색의 남자다. 그는 내가 있는 쪽으로 가만히 다가오더니 미동도 않고 나를 바라본다.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나였다. 어둠이 내리는 사막에서 무엇을 그리 찾고 있었던가.
나는 한숨을 쉬며 책을 던져버리고 , 허탈한 마음으로 노트북을 닫아버렸다. 내가 찾고 있는 것은 어떤 '끝'이었다. 여행의 끝이자 삶의 끝. 피할 수 없이 가야 할 길이라면 끝까지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처없는 유랑에 대한 욕망이 슬금슬금 때로는 불끈불끈 치밀었다. 그때마다 책을 덮고 노트북을 닫는 일이 반복됐다.
이번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글을 쓴다는 행위조차 부질없다. <<길 위에서>>의 샐과 딘, <<인도방랑>>의 후지와라 신야처럼 길 위에 서고 싶다는 욕망에 허덕였다. 나는 그런 날것 같은 여행을 해본 적이 있던가. 질투였다. 책을 쓰고 나면 떠날 수 있을 거야. 가까스로 그 욕망을 달래고 또 달랬다. 가까스로 여행은 끝이났다.
이제 책을 마무리하면 또 다른 몽상을 꿈꾼다. 여. 행. 을. 가. 야. 겠. 다. 목적지는 <<책여행책>>의 '그곳'이다. 이번에는 좀 오래 여행을 하고 싶다. 이마저 몽상에 그칠지도 모르지만 네 권의 책을 냈으니 이제는 좀 긴 여행, 아니 유랑을 할 때가 되었다.
2011/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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