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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 (노무현재단 엮음. 유시민 정리. P.332~ P.335)  중에서 맨  마지막 글을 발췌해 옮깁니다.  
자서전은 생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직접 써 남기신 글을 토대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이 정리했습니다.
아래 글은 아마도 서거 하신 날 남기신 행적을 더듬어 유시민전 장관 이 재구성한 부분 같네요.  



8 마지막으로 본 세상


  평소보다 조금 일찍 눈을 떴다. 거실로 나왔다. 어제 저녁 건호와
함께 집 뒤뜰과 주변 잡초를 뽑았다. 겨울에 발을 수술한  후로 아
내는 걸음이 불편해 건호와 내가 주로 했다. 오랜만에 맥주를 마시
며 모자의 정을 나누느라고 늦게 잠자리에 들었던 탓인지, 아내는
아지 곤히 자고 있었다. 늘 쓰던 거실 컴퓨터를 켜고 여러 날 간직해
왔던 생각을 가만가만 자판을 눌러가며 한 줄씩 적었다. 다 쓴 다음
바탕화면에 저장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 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자판 누르는 소리에 아내가 깬 것 같았다. 인터폰을 들어 경호
관을 불렀다. 파일을 열어 문장을 손본 다음 수정한 글을 다시 저장
했다. 회색 콤비를 걸치고 현관으로 나와 캐주얼 단화를 신었다. 꾸
물거리다가는 건호와 아내가 따라나서려고 할지도 모른다. 현관에
경호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청와대에 있던 때부터 나를 많이 좋아했
던 사람이다. 정문 경비를 하는 의경이 거수경례를 했다. 가볍게 답
례하고 집 담장을 따라 걷는데, 담장 아래 잡초가 보였다. 어릴 때
뛰어다녔던 고샅길이다. 잡초를 뽑아 길가에 던졌다.

    봉화산 등산로 입구 마늘밭에 마을 주민 박 씨가 있었다. 마늘
작황을 물어보았더니 신통치 않다고 했다. 정토원으로 가는 산길을
올랐다. 봉수대 근처까지 올라갔다가 발길을 돌렸다. 내려오다가 오
른쪽 부엉이바위로 갔다. 발아래 아내가 건호가 잠들어 있는 집과
복원 공사를 하는 생가터가 보였다. 손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손수
건은 내가 몸에 지닌 유일한 것이었다. 담배가 있는지 물어 보았더니
없다고 했다. 가져오라고 할지 묻기에 됐다고 했다. 아내의 지청
구를 들어가면서 수십 년 동안 담배를 수도 없이 끊었다 피웠다 했
던 일이 떠올랐다. 정토원에 가서 선진규 법사가 계신지 보고 오라
고 했다. 경호관이 돌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앞으로 그에게 닥칠 일
을 생각하니 인간적으로 미안했다. 그러나 곁에 두었다가는 더 큰일
이 날 것 같았다.

    봉하 들판을 내려다 보았다. 고개를 들어 해가 떠오르는 남동쪽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일출 시간이 지났지만 두터운 구름과 자욱한
아침안개 때문에 아직 해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곧 태양이 솟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다리를 곧게 펴고 섰다. 태어나고 자랐던
고향 마을의 정겨운 산과  들을 찬찬히 눈에 담았다. 마지막으로 본
세상은 평화로웠다.
끝.



몇 주전 다니러간 고향 서점에서 사 올라오는 기차안에서 봤는데 눈시울이 붉어져 끝까지
읽지를 못했습니다.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 절망, 배신, 미안함, 희망 등 말못할 감정들이
교차해서요. 그리고 오늘 책을 꺼내 마지막 장을 '겨우' 읽었습니다.



'사람사는 세상'



이 사람, 단지 이 소박한 꿈 하나 이루려 했을 뿐인데...  
이마저  지켜주지 못하고 보낸 거 같아 너무 미안하네요.  


잘 계시죠...

오늘따라 너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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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3 02:57 2010/05/23 02:57
Digital Nomad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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