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원한 '정치적 경호실장'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생전에 노 전 대통령이 남긴 필적들을 정리해 엮은 자서전 '운명이다'의
마지막에 남긴 에필로그입니다.
유시민 전 장관이 쓴 글이지만 읽으면서 오롯이 노무현을 그리워하는, 그의 순수한
정신을 사랑했던 지지자들의 마음입니다.
'대통령이던 시절에도 대통령을 마친 후에도 그는, 꿈을 안고 사는 청년'이어서
보냈지만 보내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사람 사는 세상'의 꿈이 그렇게 살아 있는 한,
그를 영영 떠나 보내지는 못할 것 같네요.'
노무현 전 대통령 자서전 '운명이다' 에필로그 / 청년의 죽음 - 유시민
(중략)
려받은 재산이 없었다. 화려한 학력도 없었다. 힘있는 친구도 없었
다. 고통 받는 이웃에 대한 연민, 반칙을 자행하는 자에 대한 분노,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는 열정 말고는 아무것도 없
었다. 그는 연민과 분노와 열정의 힘만으로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
갔다. 처음에 혼자였던 그는 마지막에도 혼자였다. 높은 곳으로 올
라가는 동안에도, 높은 곳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도, 그는 자기를 사
랑하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놓아 두지 않았다. 끝없이 연민과 안타까
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는 높은 곳에서 희열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낮은 곳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에만 기쁨을
느끼는 듯 보였다. 그럴 때조차도, 함께 고통 받지 않으면 죄의식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좋았다. 그가 혼자, 너무 외로워 보였기에 그에
게 다가섰다. 하지만 그의 외로움을 덜어 주지 못했다. 그가 회복할 수
없는 실패로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받고 있었던 시간, 나는 곁에 없
었다. 그가 절대고독 속에서, 돌계단을 하나씩 밟으며 혼자 부엉이
바위에 오르게 버려두었다. 그를 외롭지 않게 하려고 내가 했던 모
든 일들이, 오히려 그를 더 혹심한 고독에 몰아넣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혼자 떠났다는 것을 안 순간, 나를 사로잡은 감정은 짓누르는
죄책감이었다. 그런 감정 없이는, 지금도 그를 떠올릴 수 없다.
(중략)
자기 자신 말고는 아무것도 없이 가장 높은 곳으로 오르는 동
안, 그는 너무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도움을 받았다. 그는 그 사람들
을 생각했다. 대통령으로서 알고 범죄를 저지는 것과, 주변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사고가 난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그는 '사실'을 지
킴으로써 자신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명예를 반이라도 지키고 싶었
다. 그러나 그마저도 헛된 희망이었다. 누구도 '사실'과 '피의자의
권리'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치검사들과 언론은
그를 부패하고 파렴치한 인물로 만들었다. 민주주의, 인권, 정의, 국
민 통합을 원해서 그를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에게도 침을 뱉었다.
이것이 죽음보다 고통스러웠기에 그는 외쳤다. "노무현을 버리셔야
합니다!"
(중략)
그가 남긴 말과 글을 정리하면서 끊임없이 자문해 보았다. 그는
세상에 무엇을 남겼는가? 나는 그와 어떻게 작별해야 하는가? 그는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었다. 그 꿈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그 꿈이 결국 그를 부엉이바위에 오르게 했다. 5년 동안 나라의 대통
령을 지낸 사람이지만,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는 '꿈 많은 청년'이었다.
2009년 5월 23일 아침 우리가 본 것은'전직 대통령의 서거'가
아니라 '꿈 많았던 청년의 죽음'이었는지도 모른다. 1987년 6월항쟁
은 우리 민주주의의 청춘이었다. 양김 분열과 3당합당, 정치인들의
기회주의와 시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거치며 모두가 중년으로 노
년으로 늙어 가는 동안, 그는 홀로 그 뜨거웠던 6월의 기억과 사람
사는 세상의 꿈을 가슴에 품고 씩씩하게 살았다. 잃어버린 청춘의
꿈과 기억을 시민들의 마음속에 되살려 냈기에 그는 대통령이 되었
다. 대통령이던 시절에도 대통령을 마친 후에도 그는, 꿈을 안고 사
는 청년이었다.
연민의 실타래와 분노의 불덩이를 지니고 살았던 그는, 반칙하
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했다. 대한민국을
그런 믿음 위에 올려놓으려고 했다. 그 믿음이 국민의 마음에 뿌리
를 내리지 못하는 한, 노무현이 대통령일지라도 그 시대는 '노무현
시대'일 수 없었다. 그는 대통령으로서 다 이루지 못했던 꿈을 마저
이루기 위해 전적 대통령으로서 시민으로서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
다. 그런데 자신의 존재가 그 꿈을 모욕하고 짓밟는 수단이 되고 말
았다.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기에 그는 생명을 버렸다. 그가 생명을
던진 그 자리에, 이제 '사람 사는 세상'의 꿈만 혼자 남았다.
'사람 사는 세상'의 꿈이 그렇게 살아 있는 한, 그를 영영 떠나
보내지는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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